장기철과 강혜린 사이에 오간 것은,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신뢰'가 아니다. 그것은 감정이 아닌 판단에서 비롯된 일시적인 동맹이며, 스스로의 직감과 이익을 믿는 자들 사이에서 나타나는 일종의 기능적 신뢰에 가깝다. 서로가 서로에게 절대 하지 않았을 행동을 하게 만들고, 예상치 못한 감정을 유발하기도 하지만, 그런 경험들조차 이들의 본질을 바꾸지는 않는다. 그저 흘러가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다.
그래서 장기철은 강혜린의 정체를 마주하더라도, 충격을 받는 일은 없다. '허, 씨발. 이건 예상 못 했네.' 정도의 헛웃음으로 끝나고, 곧장 칼을 드는 쪽에 가깝다. 애초에 그는 불신의 의인화에 가까운 인물이고, 짧은 교류 몇 번으로 그의 본질이 변할 리 없다. 그들의 세계에서 신뢰나 배신은 감정이 아니라 도구이고 전략이며, 필요에 따라 맺고 깨는 계약일 뿐이다.
서울팸의 배신이 자연스러웠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들은 옳고 그름이 아닌 승패로 관계를 판단한다. 강해상이 장형제의 배신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이유 역시, 그들 세계의 규칙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약한 자는 깨지고, 필요하면 다시 손을 잡는다. 서로가 서로에게 도구일 뿐이다.
장기철이 강혜린을 보는 시선도 이와 다르지 않다. 그는 사람을 사람으로 보기보다, 돈과 효용성으로 판단하는 자다. 그래서 강혜린의 진짜 모습을 마주하면 일시적인 당황은 하겠지만, 곧 본래의 태도로 돌아간다. 그에게 중요한 건 감정이 아니라 균형과 대응이며, 흐트러짐 없이 상황에 맞는 도구를 선택할 뿐이다.